어느 가족(만비키 가족, Shoplifters), 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 

나의 최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이니,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황금 종려상에 빛나는 영화의 타이틀에 비해 기대보다는 그저 조금 평범했나 라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리뷰를 찾아 보고 나니,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겠다. 


그동안 가장 최근작 두 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보아왔다.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공기 인형(200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까지.

그의 지난 영화들에 나왔던, 어디서 본 듯한 역할과 캐릭터, 스토리등이 엮여서 새로운 가족 이야기로 탄생된 것. 그래서 익숙한 느낌이었구나. 


늘 감독이 영화에서 말해오던 메세지 같은 것들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속의 '아이들은 역시 시간이죠, 시간!'을 외치던 철들지 않은 아빠역의 릴리 프랭키도 그대로 였고,

쇼타와 린(쥬리)은 <아무도 모른다>속의 첫째 아키라와 막내 유키를 닮았다. 

키키 기린은 언제나 처럼 익숙한 집안의 어르신이자 할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새로운 멤버가 가족으로 스며든다. 

이번 영화의 새로운 얼굴이라면 노부요 역할(안도 사쿠라) 뿐이랄까. 




누군가의 '우리는 행복했는데, 세상은 우리가 행복했다고 믿어주지 않았다'는 평이 가장 와 닿았다.


게다가 나는 expat 전용 영문 자막으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한글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일본 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본다는 것은, 의미는 알아듣지만 정확한 언어로 와 닿지는 않는 경험이다. 언어는 생각보다 엄청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심지어 어떤 영화의 감상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해도가 달라지고 선택한 언어나 문장이 뇌에 전해지는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로 영화를 보게 되면 언어가 모국어인 한국어만큼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맥락과 상황을 유추하려 노력하고, 그래서 오히려 비언어적인 배우들의 손짓이나 눈빛 숨소리 하나하나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온전한 언어가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 아마도 나중에 한글 자막으로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분명히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어둡거나 비극적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그렇다고 커다란 희망을 갖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만큼은, 적어도 그 시간과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같은 집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 먹고 안부를 물으며 보낸 시간들이 어떻게든 린과 쇼타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다른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분명 그들은 좀도둑 가짜 가족이었으나, 함께 나눈 시간과 마음은 진짜였으니까. 


해외에서 어쩔 수 없이 하우스 메이트들과 함께 살다 보니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더 뼈저리게 생각해보게 된다. 

애정 같은 것들은 그립지 않은데, 아무것도 아닌 안부를 나누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낄낄대거나 평소에 저녁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 그립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함께 하는 사람들. 


Swimmy처럼 서로 각자 다른 목적으로 대체 가족이 되어 살아왔지만, 우리는 절대 그들이 가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사관이 노부요를 취조할 때, 그녀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다 엄마가 되느냐'고 묻는다. 누군가 버린 것을 주운 것도 죄가 되느냐고. 그러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10년이 넘게 보아오면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하는 방식과 표현법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노희경 작가의 글을 보면 늘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 처럼. 아니 이 세상 저마다의 '작가'라 불릴 수 있는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그렇듯이. 


맨 처음 디자인 회사의 인턴으로 일이 끝났을 때, 실장님이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으면 영화 감독을 하라고. 그래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다 할 수 있다며. 그땐 디자이너인 나한테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싶었는데, 가끔 그 말이 떠오르곤 한다. 진짜 그러네, 싶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뭘까. 밑바닥에 있는 것들은 아주 작은 틈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좀처럼 위로 떠오르질 않아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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