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 파수꾼

Art/Culture 2018. 9. 5. 23:23







거인(Set me free), 2014, 김태용 감독 최우식 주연 



포스터가, 혹은 포스터에 쓰인 문구가 이렇게 와 닿았던 적이 있던가 싶다. 


사는 게 숨이 차요. 


숨이 차지, 영재의 삶이라면. 

영재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버겁게 지나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그의 삶을 비춘다.

책임을 지지 않는 부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든 지금 이 곳에서 쫓겨나지 않고 삶의 밑바탕을 조금이라도 다지기 위해.







러닝 타임 내내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불안한 영재의 눈빛은 나까지도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혹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지만, 나는 영재를 이해한다. 그만큼 극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사는 내내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눈치를 보며 사는 삶에 익숙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마음 편히 사는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다. 서글프게도. 

그래서 영재를 보며, 마음속으로 자꾸 외쳐야 했다. 그만, 그만해. 더 가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들리지 않았겠지 그 삶을 사는 동안에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너, 연기하는 거 다 티나. 그냥 솔직하게 살아. 


어느 부분만 불필요하게 기형적으로 자라 거인이 되어버린 영재에게 그 이후의 삶이 존재했을까. 마지막에 자신의 물건을 동생에게 건낸 후 떠나는 영재의 모습에 감독은 그래도 좋은 어른이 될 거라는 희망을 남긴거라 했지만, 내게는 그 이후의 삶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동정도 분노도 하지 않으며 관조하는 시선의 영화를 보고 나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나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데), 그 이후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숨찬 삶을 버틸수 있게 해 주는,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것이 있었을까/혹은 생겼을까. 영재에게.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실제 경험담에서 비롯한 영화라서 그런지, 감정의 선 하나 하나가 디테일하게 와 닿았다. 부모가 존재하는데도 그룹홈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을 택한 삶은 어떤 것일지, 어떤 마음일지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있을까. 최우식 배우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배우를 캐스팅 하는데 일조했다던 에튀드 솔로를 보았는데, 보고 나니 감독이 발견했다던 최우식 배우의 비릿한 눈빛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포스터는, 근 몇 년간 보았던 (특히) 한국 영화중에 최고.  










파수꾼, 2011, 윤성현 감독

이제훈, 박정민, 서준영 배우 주연 


우울한(경쾌하지 않은) 영화들은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아무래도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현실이 팍팍한데 영화로라도 환상의 세계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클때가 많고, 영화를 본다고 해서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마음을 먹게 되면 걸작을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더 큰 것 같다. 거인을 보고 나니, 그제야 파수꾼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를 계기로 당시의 독립영화판에서 신예로 떠오르던 이제훈과 박정민은 지금은 충무로의 든든한 기대주가 되었다는 것. 거인의 최우식 배우가 성장한 것처럼,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어쩌면 조금은 비슷한 경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꽤나 입소문을 탔던 영화답게, 잘 만들었다. 이제훈의 연기도 좋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 개봉 당시만큼의 힘을 느끼지는 못했다. (영화에서 종종 동시대성이 상당히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거인과 파수꾼은 둘 다 너무 좋은 영화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거인이 남긴 울림이 너무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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